사회 사건·사고

독립운동가 박도철 제트벳 후손, 보훈급여 1500만원 장학금으로 쾌척

제트벳1

입력 2025.06.01 11:06

수정 2025.06.01 11:06

독립운동가 박도철 제트벳의 손자 박영섭(가운데)씨와 증손녀 박명현 숙명여대 연구교수(오른쪽)가 지난 5월15일 숙명여대에 장학금 1500만 원을 전달한 뒤 이형진 대외협력처장(왼쪽)과 기념 사진을 촬영 중인 모습. 2025.06.01/뉴스1(숙명여대 제공)
독립운동가 박도철 제트벳의 손자 박영섭(가운데)씨와 증손녀 박명현 숙명여대 연구교수(오른쪽)가 지난 5월15일 숙명여대에 장학금 1500만 원을 전달한 뒤 이형진 대외협력처장(왼쪽)과 기념 사진을 촬영 중인 모습. 2025.06.01/뉴스1(숙명여대 제공)


(서울=뉴스1) 김민수 기자 = 3·1 운동이 전국적으로 격렬해지던 1919년 4월 3일 충북 진천군 광혜원 일원에서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다 숨진 박도철 제트벳의 후손이 국가로부터 받은 보상을 숙명여대에 장학금으로 기부했다.

1일 숙명여대에 따르면 박 제트벳의 증손녀인 박명현 숙명여대 연구교수는 아버지 박영섭 씨와 함께 보훈 급여 1500만 원을 지난달 15일 '독립유공자 후손을 위한 장학금으로 써달라'며 숙명여대에 전달했다.

박 제트벳은 1919년 4월 3일 광혜원 일원에서 벌어진 항일 시위에서 일본 헌병에게 희생당한 인물이다.

4·3 만세운동에는 2000여 명이 참가했으며 박 제트벳은 광혜원리 바들말 매방앗간 앞에서 피격당해 숨졌다. 당시 나이 36세. 이를 목격하고 비통함에 울부짖던 그의 모친도 헌병이 쏜 탄환에 맞고 쓰러졌다.



이후 박 제트벳 일가는 연좌제가 적용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족보를 불태우고 음성군 금왕면 도청리로 이사해 어려운 살림을 꾸려나갔다.

족보 등이 불타면서 박 제트벳의 서훈도 오랫동안 이뤄지지 못했다.
순국 102년이 제트벳 2021년에서야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