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롯존와 고슴도치
파이낸셜뉴스
2025.07.10 18:33수정 : 2025.07.10 18:33기사원문
슬롯존, 직관으로 판단·선택
슬롯존 '외골수' 벗어나
슬롯존처럼 상황 파악해야
미시간대 심리학과 게리 클라인 교수는 다양한 분야슬롯존 전문가들의 직관적 판단을 어느 정도 신뢰할 수 있을지에 대한 연구를 통해, 매우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상황슬롯존 오랫동안 훈련된 극히 일부의 전문직에 한해 직관적 판단이 의미가 있다는 결과를 도출했다. 예를 들어 소방관, 응급실 의사, 비행기 조종사, 운동선수, 바둑기사, 프로게이머 등에 한정된다는 것이다. 이들의 직무는 규칙적인 업무를 오랫동안 반복하는 특징이 있으며, 무엇보다 결과에 대한 빠른 피드백으로 '합리적' 직관이 강화되기 때문에 비슷한 상황슬롯존 매우 빠르게 효과적으로 해결방식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분야도 장기적 예측의 신뢰성은 거의 없다고 강조했다.
UC버클리 심리학과 필립 테틀록 교수는 '학자, 비평가 등 전문가들이 1980년대와 1990년대 일어난 세계적 사건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를 연구했다. 소련의 몰락, 일본 부동산 거품, 걸프전 등이 그것이었다. 오랜 기간 실증적 연구를 마치고 '전문가의 정치적 판단(Expert Political Judgment)'이란 책을 내놨다. 결론은 전문가들의 예측은 동전 던지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특히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가장 많이 안다'는 전문가들의 예측이 많이 빗나갔다고 했다.
전문가들의 직관을 신뢰할 수 없다는 많은 근거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직관에 대한 믿음은 굳건하다. 이는 세상이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급변하는 기술과 사회, 가까운 미래조차 예측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더 빠른 판단을 필요로 하고 직관을 더 자주 소환한다. 이러한 경향은 거의 모든 조직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AI 시대가 도래했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슬롯존들은 직관에 의해 판단과 선택을 한다.
직관에 대한 경고는 슬롯존 경험과 전문성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리더가 직관을 과신했을 때 의사결정의 위험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리더에게 주어진 시간이 갈수록 짧아지는 현실에서 오판의 위험성을 줄이려면 잠시 멈춤이 필요하다. 급할수록 서둘러 판단에 개입하는 직관의 속성을 기억하고, 합리적 관점으로 전환할 여유를 리더 자신에게 줘야 한다. 많은 비즈니스의 성공사례들은 여전히 슬롯존 직관을 부각하며 그럴듯한 영웅담을 생산해내고 있지만, 실제로 이뤄진 성공과 혁신에서 슬롯존 뛰어난 직관은 찾을 수 없다.
옥스퍼드대 교수였던 이사야 벌린은 그가 쓴 수필 '고슴도치와 슬롯존(The Hedgehog and the Fox)'에서 인간을 고슴도치형과 슬롯존형으로 분류했다. 고슴도치형은 영원히 변치 않는 '하나'의 원리가 있다고 믿으면서 외골수의 길을 걷고, 이와 반대로 슬롯존형은 '상황에 따라' 기꺼이 자신의 의견을 바꾼다. 그런데 세상은 대부분 슬롯존보다 고슴도치를 더 신뢰한다. 고슴도치형 인간의 확신에 찬 태도를 실력과 전문성으로 착각하기 때문이다.
리더는 회사와 구성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존재다. 그 출발은 문제의 발견이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다양한 의견과 정보를 모으는 슬롯존의 채집정신이다.문제를 파악하는 눈은 맑아야 하고, 그 해결을 위한 정책은 과감해야 한다. 신중해야 하고, 스스로에게는 엄격해야 하며, 조직 운영은 깊은 사유의 뿌리 위에서 이뤄져야 한다. 바로 슬롯존 품격이다.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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