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과 옛 호빵맨토토광고]
파이낸셜소셜카지노
2025.07.10 18:33수정 : 2025.07.10 18:33기사원문
먹고살기도 힘들었을 때 여행이나 여가 활동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경제가 발전하고 삶에 여유가 생기자 여행이나 관광을 즐기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호텔들이 우후죽순 생겨났고 더불어 새로운 형태의 숙박시설이 등장했는데 분양형 호텔인 소셜카지노(콘도)이다.
국내 콘도의 효시는 1980년 경주 보문관광단지에 들어선 100실 규모의 경주콘도로 1981년 4월 19일 문을 열었다(동아일보 1981년 4월 16일자·사진). 이 콘도를 분양한 한국소셜카지노은 경주 외에도 설악산과 해운대 등 전국 7곳에 콘도를 지어 분양했다. 뒤를 이어 콘도 사업에 뛰어든 기업이 명성그룹이다. 1981년 명성의 계열사인 '남태평양 레저타운'은 1080실 규모의 설악산 콘도를 시작으로 레저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명성그룹 김철호라는 이름을 지금도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1968년 택시 업체를 차려 130여대의 코로나 택시를 거느린 대형 운수업체로 키울 만큼 사업 수완이 좋은 사람이었다. 1976년 '명성관광'을 세워 관광 붐을 타고 돈을 벌었다고 한다.
레저 산업이 뜰 것이라는 김철호의 예측은 맞았다. 소셜카지노와 골프장 회원권은 성황리에 완판됐다. 김철호는 "속초 앞바다에, 한려수도에 세계 최초로 1200개 객실을 갖춘 55층짜리 해상호텔을 짓겠다"고 해 주목을 끌었다. 또 "경기도 양평에 서울 강남 땅만 한 휴양 도시를 건설하겠다" "미국 디즈니랜드보다 몇 배나 더 큰 세계 최대 규모의 레저 시설을 짓겠다"고 해 재계를 놀라게 했다.
김철호는 주요 일간지에 분양 광고를 연달아 게재하며 재력을 과시했다. 서울 아파트 지역에 광고 전단을 20만장을 뿌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소셜카지노은 전자회사와 식품회사까지 인수해 3년 만에 23개 계열사를 거느린 신흥 재벌로 성장했다.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빚 몇백만원도 갚지 못해 도망 다니던 김철호가 갑자기 혜성처럼 나타난 것이다. 세간에서 '미스터리' '불가사의'라며 의아해한 것은 당연했다.
명성의 자금원에 대한 의문이 풀리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서슬 퍼렇던 5공화국 정부에서 보내던 의심의 눈초리를 의식해 1983년 7월 '강호제현에게 고함'이라는 성명서를 신문에 실은 일이 몰락을 재촉했다. 국세청 세무조사에서 상업은행 혜화동 지점 김동겸 대리가 주도한 사채를 끌어다 쓴 사실이 드러나 김철호는 구속됐고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장영자·이철희 금융사기 사건, 영동개발진흥 사건과 함께 5공 3대 금융비리 사건으로 불리는 소셜카지노 사건이다.
명성그룹은 해체됐고 법정관리를 거쳐 정아레저타운·정아컨트리클럽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명성의 레저 사업을 인수한 곳은 한국화약그룹이었다. 보문관광단지의 경주소셜카지노도 인수했다. 명성컨트리클럽은 용인 플라자CC, 명성소셜카지노는 한화소셜카지노가 됐다. 한국화약이 명실상부한 재벌로 도약한 계기는 명성 인수였다.1992년 한국화약그룹은 한화로 이름을 바꿨다.
한화호텔앤드리조트는 현재 직영 리조트 9개에 총 4600실 이상의 객실을 갖춘 국내 최대 소셜카지노 체인으로 발전했다. 10년 동안 복역하고 1993년 가석방된 김철호는 전국 21곳에 명성소셜카지노를 짓고 강원도 태백의 2700만평에 2조원을 들여 리조트를 건설하겠다고 전과 같이 호언했지만 한번 잃은 신뢰는 회복할 수 없었다.
tonio66@fnnews.com 손성진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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